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부자감세’가 아니라 ‘경제활동감세’?···이득 누가 챙길까? 본문
“부자 감세는 ‘부자를 위한 감세’라는 뜻으로 이해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활동을 위한 세제 지원, 민생 안정과 경제활동 감세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게 도대체 뭔 소리일까요? 술 한잔 걸친 사람의 헛소리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일 국회에 출석해 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부자 감세’ 때문에 세수 부족이 발생했다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최 부총리가 내놓은 해명이라는데요.
최 부총리는 국어사전도 못믿는다는 건가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부자 감세는 ‘고액 자산가, 고소득자 등의 부자에게 부과된 세금의 액수를 줄이거나 세율을 낮추는 일’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세제 지원, 민생 안전, 경제 활동 감세와 관련된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최 부총리는 국어사전을 다시 쓸 생각인가요?
최 부총리가 혹시 말 실수를 한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최 부총리는 지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윤석열 정부는 ‘부자 감세’를 한 적이 없다”며 “‘부자 감세’가 아니라 ‘내수 촉진 감세’”를 했다는 황당한 주장도 했습니다. 부자들 세금 깎아주는 것이 내수 촉진 감세라니 정말 기가 막히죠. 이 당시에도 여러 전문가들의 비난을 받았는데요 최 부총리는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들 세금 깎아줘야 민생이 안정되고 경제가 살아난다고 믿고 있다는 거죠. IMF에서도 없다고 인정한 ‘낙수효과’를 신화처럼 받들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신화는 깨지기 마련이죠. 최근 국회에서 놀라운 주장들이 제기됐는데요. 부자감세가 아니라는 최 부총리의 시각을 여실히 박살내는 내용 두가지만 살펴볼까 합니다.
첫 번째, 엔론, 월드컴, 머크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한 때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그런데 분식회계로 몰락한 주인공들입니다. 당시 미국은 물론 전세계 시장을 호령했었으나 회계에 분칠했다는 사실이 들통 나면서 세계적인 스캔들을 일으켰는데요. 이 덕분에 세계 각국 정부는 기업들의 회계 장부를 더욱 꼼꼼히 들여다보기 시작했죠. 물론 그래도 분식회계 뉴스가 전세계에서 끊이질 않긴 했는데요.
그런데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분식회계와 비슷한 짓을 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영환 민주당 의원은 현 정부가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국채발행뿐만 아니라 돌려막기 꼼수를 동원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김 의원은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받은 ‘2023회계연도 내부거래 불용내역 등의 현황’을 분석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지난해 국가채무 중 일반회계 적자보전 채무는 전년과 비교해 54조3000억원 증가했습니다.
정부가 이를 메우기 위해 신규 발행한 국채는 45조8000억원 규모. 나머지 8조5000억원은 금융성 채무인 외국환평형기금 재원을 적자성 채무인 공적자금 회계로 끌어와 일반회계 적자보전용 국고채 상환으로 집행했습니다.
이게 무슨 문제냐 하실 수 있는데요. 현정부는 문재인 정부 당시 국채를 남발해 왔다고 비난했잖아요. 그래서 필요한 국채 발행마저 규모를 줄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그냥은 불가능하죠. 그래서 외평기금 돈을 끌어다 쓴 것인데요.
문제는 국채와 외평기금은 엄연히 성격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국채는 적자성 채무이고 외평기금은 금융성 채무입니다. 어차피 같은 빚인데 무슨 차이가 있냐고 하실 수 있는데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외평채와 같은 금융성 채무는 대응 자산이 있는 것이거든요. 문제가 생기면 갚을 담보가 있다는 말입니다. 외평채를 발행한 금액으로 매입한 외환 자체가 담보가 된다는 거죠.
하지만 국채같은 적자성 채무는 대응 자산이 없습니다. 즉 담보없이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큰 나쁜 채무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세금으로 메꿀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외평채를 끌어다가 국채로 둔갑시켰다는 것은 담보있는 대출에서 담보없는 대출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문제가 심각하지 않나요?
이 때문에 김 의원은 “잘못된 세수 추계로 재정 적자를 확대한 것도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펑크난 재정을 눈속임하기 위해 채무 성질까지 바꿔버리는 '은근슬쩍' 태도는 G10 국가 진입을 바라보는 나라의 재정 운용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이것만이 아니죠. 나랏빚이 증가하면서 국고채 추가 발행에 따른 정부의 이자비용도 우려되는 대목인데요. 임광현 민주당 의원실이 제공한 '국가채무 이자비용' 현황을 보면 지난해 총계기준 국가채무의 이자비용은 24조7000억원으로 전년보다 3조6000억원이나 급증했습니다.
국가채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고채 이자비용은 2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국가채무 비중의 90%이상을 차지하는 국고채는 2021년 발행잔액 843조7000억원에서 2022년 937조5000억원, 지난해 998조원까지 불어난 상황입니다. 올해 4월 기준 발행 잔액은 무려 1039조2천억원입니다. 국채 발행을 줄인다더니 더 늘어났는데요.
덩달아 국고채 이자비용도 증가했는데요. 지난해 국고채 이자비용만 무려 23조1000억원. 관련 통계를 제출받은 2008년 이후 처음 20조원대를 기록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마통을 엄청나게 빌리고 있는데요.
양부남 민주당 의원이 밝힌 자료를 보면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올 상반기 총 91조6000억원을 빌렸고 71조7000억원을 상환했습니다. 아직 갚지 않은 잔액은 총 19조9000억원 규모입니다. 이는 한은이 집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14년 만에 최대치입니다. 코로나19 창궐에 따른 재정 지출 때(2020년 상반기 73조3000억원)보다 크게 상회합니다. 대규모 세수 펑크를 기록한 지난해 상반기(87조2000억원)와 비교해서도 4조4000억원 불어난 규모이고요.
현정부는 입만 열면 재정건전성을 강조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재정건정성을 악화시키는 것을 넘어 국가재정이 분칠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대도 부자감세는 아니라는 황당한 주장만 늘어놓고 있고요.
둘째,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종부세의 주택 가격 안정 효과가 미미하고 임차인에게 세 부담이 전가되는 요소가 있다며 폐지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죠.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종부세가 세금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종부세를 폐지하고 싶은 듯한데요. 이 또한 부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집 한 채 밖에 없는 서민 중에서도 종부세를 내는 사람이 많은 데 이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인데요. 과연 맞는 말일까요?
국세청이 양부남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종부세 납부자 상위 1%인 4,951명이 모두 2조 8,824억 원의 종부세를 납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종부세 결정세액 4조 1951억 원의 68.7%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즉 종부세 납부액의 70%를 부동산 상위 1%의 초(超)부자들이 낸 것입니다.
이를 최상위 0.1%로 대상을 좁혔더니, 종부세 납부 인원은 495명으로 1조 8,058억 원의 종부세를 납부해 전체 43.0%를 차지했습니다. 1인당 평균 납부액은 835억 2,000만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위 10%로 넓히면, 종부세 납부자는 4만 9,519명이 3조 7,106억 원의 종부세를 납부해 전체 세액의 88.5%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납부 세액 하위 20%인 9만 9,038명은 75억 원의 종부세를 납부해 전체의 0.2% 수준에 그쳤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종부세 때문에 서민들이 부담스럽다고 언론들이 난리 쳤잖아요. 그런데 납부 세액 하위 20%가 1인당 낸 평균 종부세는 겨우 8만 원. 공시지가 12억원 이상 집이 있는 사람에게 8만원이 정말 부담스러울까요?
결국 종부세 폐지나 축소는 최상위 소수 계층에만 혜택을 주는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난주 상속세 관련 방송에서도 언급했지만 종부세 폐지나 인하를 주장하는 최상목 부총리가 재산을 공개한 자료를 보면 아파트 등 건물 21억원이나 됩니다.
교수출신이자 상속세 인하를 외치는 성태윤 정책실장의 부동산 재산은 무려 42억8000만입니다. 또 종부세 폐지 법안을 발의한 김은혜 의원의 경우는 2023년 현재 자신과 남편이 보유한 부동산 가액을 합치면 공시가격으로 약 199억8000만 원(=강남구 대치동 남편 소유 토지 약 163억7000만 원 + 강남구 논현동 남편 소유 주택 약 12억7000만 원 + 강남구 대치동 남편 소유 건물 약 23억3000만 원)이고 이것을 시가로 추산하면 대략 307억3000만 원이나 됩니다.
종부세가 인하되거나 폐지되면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보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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