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공급 부족’ 86만호 쌓였다고?···팩트체크 없는 ‘소울리스독’ㅠㅠ 본문
요즘 정치권에서는 와치독, 랩독, 가드독, 슬리핑독 논란이 크게 일어나고 있죠. 왜 이 논란이 벌어졌는지는 차지하고 아마 뜻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언론학자들 사이에서 언론을 지칭하는 말인데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감시하며 자유주의 체제의 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감시견 ‘워치독’, 주인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달콤한 간식을 받아먹는 그 안락함에 취해 버린 애완견 같은 ‘랩독’, 그 자신이 기득권 구조에 편입돼 권력화됐고 그래서 권력을 지키려 하는 ‘가드독’, 매우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눈을 감고 있는 ‘슬리핑독’이 있다고 하죠.
그런데 언론만 이렇게 나눌 수 있을까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지금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어제 오늘 난리난 경제기사 하나가 있습니다. 주택산업연구원이라는 곳에서 발표한 내용을 전한 기사인데요. 국내 거의 모든 언론들이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했는데요.
- “집값 2025년~2026년에 폭등한다고?”...주택산업연구원의 경고 나왔다(매일경제)
- "이대로 가다간 2025∼2026년 집값 폭등 또 온다" 경고(한국경제)
- “주택 공급 부족 계속되면 2025~2026년 집값 폭등 가능성”(세계일보)
제목만 보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죠. 가뜩이나 요즘들어 집값이 들썩인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데 주택산업연구원이란 곳에서 이런 경고까지 하다니···. 무주택자라면 지금이라도 영끌해서 집을 사야하나란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도대체 내용이 뭘까요? 확인해보니 주택산업연구원의 정식 보고서는 아닙니다.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택공급활성화방안 세미나에서 밝힌 내용이라고 하는데요. 찾아보니 이 세미나는 주산연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고 합니다. 국토교통부, 대한주택건설협회, 한국부동산개발협회가 후원했고 한만희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이상영 명지대 교수, 이창무 한양대 교수, 한성수 국토부 주택정책과장 등이 참여해 종합토론도 진행했다는데요.
좀 이상하지 않나요? 현재 22대 국회가 열리고 있잖아요. 부동산 문제는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시급한 문제이니 국회에서 논의해야 정상이잖아요. 그런데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국회등원을 거부하는 국민의힘의 의원이 갑자기 이런 세미나를 열었다니···. 뭔가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요?
https://youtu.be/y7Fwj2GaN10?si=JjztFWzVElGhD3kI
“에이 지나친 편견”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요. 주택산업연구원 홈페이지에서 관련 세미나 자료를 읽어보면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여기실 것입니다.
일단 주택산업연구원은 자료에서 “금년 하반기중 금리하락과 경기회복 공급부족 누적 등에 따라 수도권에 이어, 일자리가 많은 지방 광역시도 집값이 강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며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주택 공급물량 감소세가 지속된다면 내년이나 내후년에 공급부족에 의한 집값 폭등세가 재현될 가능성이 크므로 당장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주택공급활성화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주택 매매 가격의 경우 올해 전국적으로는 작년에 비해 1.8% 하락하지만 서울과 수도권은 각각 1.8%, 0.9%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지난 3월 말 서울지역 아파트에 이어 지난달 말부터는 인천·경기 등 수도권 인기 지역 아파트가 상승세로 돌아섰는데, 이 흐름이 지방광역시로 확산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주택 매매가격 전망’이라는 표를 제시하는데요. 이걸 뜯어보니 너무나 이상하더라고요. 올해 서울이 1.8%, 수도권이 0.9% 주택가격이 상승한다고 했잖아요. 2022년 –4.8%, -6.5%, 2023년 –2%, -3.6%였던 것에 비하면 확실한 상승전환이죠.
그런데 재미난 것은 올해 1~4월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가격은 어떻게 됐을까요? 올해 통틀어 1.8%, 0.9%이니 적어도 마이너스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잖아요. 그런데 서울은 –0.1%, 수도권은 –0.5%입니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1~4월까지 마이너스였는데 1.8%, 0.9%가 되려면 나머지 8개월 동안 얼마나 올라야 할까요? 적어도 서울은 3%, 수도권도 2.5% 이상 올라야 합니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폭등 수준인데요. 물론 표에서 제시했듯이 2017~21년 평균이 3.3%, 1.9%였으니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집값이 폭등하려면 경제가 과거처럼 그만큼 받쳐줘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주산연은 금리하향 움직임과 경기회복 등에 따라 실제 구매수요인 유효수요가 빠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큰 상태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난주에도 살펴봤듯이 미 연준이 올해 금리를 내려봤자 겨우 1번에 그칠 가능성이 큰데 미국보다 2%포인트나 기준금리가 낮은 우리나라가 금리를 내릴 수 있을까요? 금리를 내렸다가 주식시장이 붕괴위기에 빠진 프랑스로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요?
게다가 경기회복이라뇨? 경기가 좋아지는데 왜 연체율이 오릅니까? 4월 국내 은행의 대출 연체율은 0.48%로 전월보다 0.05%포인트 올랐는데요. 가계는 물론 기업 대출 연체율마저 고공행진입니다. 게다가 지난해 우리 경제가 1.4% 성장했지만, 세금, 대출 이자 등을 내고 남은 가계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1.2% 쪼그라들었습니다. 가계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이 줄어든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입니다. 월급은 그대로인대 물가는 고공행진인 탓에 소비마저 줄이고 있죠. 그래서 소비자심리지수마저 꺾이고 있고요.
https://youtu.be/dgeM1M6pg1Y?si=EYtwDRUgVrjfw-6n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정부마저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역동경제 로드맵’을 곧 제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핵심은 매출 감소와 고금리 등으로 한계 상황에 놓인 자영업자들이 임금근로자로 취업하도록 지원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즉 자영업하기 힘들면 다시 월급쟁이 하라는 건데요. 정말 기가 막히죠. 월급쟁이 싫어서 회사를 때려 친 자영업자들도 많을텐데 이들에게 다시 월급쟁이하라니···.
정부마저 이런 ‘황당한’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경기회복이라고요. 딴나라에서 왔나요?
여기까지 우리나라 경기가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랬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음은 어떻게 설명할까요?
“주택공급측면에서는 공사비는 급등한 반면 미분양 적체와 사업착수를 위한 브릿지론과 PF도 어려워지고 대출금리도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서 인허가는 예년 평균 54만호 보다 30% 줄어든 38만호 수준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정말 이 수치대로라면 공급 부족으로 대란이 일어날 것으로 걱정되죠.
그런데 바로 밑에 표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참고로 재미난 것은 본문 내용과 표가 달라요. 발표하면서 숫자 확인도 안하나요? 아무튼 확인해보니 표가 맞다고 해서 표를 위주로 설명드릴께요.
주택시장 침체로 21~22년 사이 인허가를 받고 착공을 미룬 물량이 25만호(지난 3월 27일자. 입주예정아파트 18만호 사라졌다 편에서 지적했던 내용) 가량이 대기중이랍니다. 이 때문에 이 물량이 착공에 들어가면 올해 착공물량은 지난해보다 11만호나 늘어난 35만호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공급부족이라고 설레발이란 설레발은 다치더니 말이죠.
혹시 분양물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요? 분양도 지난해 19만2000호에서 올해는 28만호로 9만호 가까이 늘어난다는 군요. 게다가 준공도 지난해 43만6000호에서 1만4000호 늘어난 45만호.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준공도 늘어났고 내년이나 내후년을 바라보는 착공 44.6%, 분양 45.8%가 지난해보다 증가했는데도 공급 부족이라고요. 정말 기가막히죠.
더 기가 막힌 내용도 말해볼까요? 앞으로가 아니라 지난 2020년에서 24년까지 5년간 공급부족량이 무려 86만호나 된다고 주산연은 주장합니다. 가구와 멸실주택 증가폭이 커서 38만호, 시장침체에 따른 공급감소로 47만호가 부족하다는 건데요.
86만호면 전남 전체 가구 수보다도 많습니다. 101만 가구인 대구 전체보다는 조금 적고요.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숫자가 공급 부족이라면 정말 우리나라 부동산이 난리가 나야 정상 아닌가요? 2인 가구라고 해도 190만명 가까이가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데 폭동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 부동산 시장에서 정작 미분양 때문에 난리잖아요. 정부가 밝힌 자료를 봐도 지난 4월 말 기준 미분양 주택은 전국 7만1997가구로 한 달 전(6만4964가구) 대비 10.8%(7033가구) 증가하며 1년 전(7만1365가구) 수준으로 회귀했습니다. 그런데 업계에서는 이 숫자를 믿지 않죠.
https://youtu.be/qv-KJtSSGMw?si=yTqMg0aPJqqqGLnY
예전 방송에서도 지적했듯이 미분양 통계는 국토부가 직접 조사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건설사가 해당 지자체에 미분양 주택수를 신고하면 국토부가 이를 취합하는데 그칩니다. 따라서 건설사가 마음대로 신고해도 된다는 거죠. 허위·축소 신고하거나 자료 제공을 거부해도 제제조차 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건설사 입장에서 내가 만든 아파트가 팔리지 않는다고 정직하게 신고할 까닭이 있을까요? 미분양이라고 제대로 신고했다가 ‘미분양 단지’로 낙인찍혀 팔리지 않으면 누구 손해인데요. 따라서 현재 미분양 수치보다 두배는 더 많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는데요.
웃기지 않나요? 주산연은 2020년에서 24년까지 5년간 공급부족량이 무려 86만호나 된다고 했는데 미분양은 공식 8만, 비공식 10만을 훨씬 넘다니···. 혹시 주산연은 이걸 모르고 세미나를 한 것일까요? 놀랍게도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주산연이 가진 세미나에서는 주산연이 현장과 겉도는 미분양 통계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최덕철 주산연 부연구위원은 “미분양주택 통계는 조사기관에서 사업자에게 문의해 답변한 내용을 기초해 조사된 것으로 30~50% 축소 신고가 관행”이라며 “지난 4월말 기준(한국은행)으로 정부 통계상 미분양주택은 전국 7만1000채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도 통계보다 40% 넘게 많은 10만채 이상”이라고 추정했는데요.
바로 1년 전에 이런 지적을 내놓고도 공급부족량이 무려 86만호가 된다며 공급부족이라고 떠벌리다니···. 부동산 연착륙을 주장하면서 어떻게든 ‘빚내서 집사라2’를 만들고 싶어하는 정부와 국민의힘에 동조하는 랩독이 된 탓일까요? 하긴 주택산업연구원은 그래도 될 듯합니다. 왜냐면 주택산업연구원은 정부산하 연구원이 아니라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대한주택보증이 공동출연해 만들어진 민간연구기관이거든요. 당연히(?) 건설업계 편을 들 수 밖에 없겠죠.
그러면 이를 감시해야 하는 언론들은 뭐하는 걸까요? 세미나 내용의 허구가 있는지, 수치가 이상한지는 전혀 살펴보지 않고 보고서 요약본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전하다니···. 랩독, 슬리핑독도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할까요? 영혼이 없다는 ‘소울리스독’이라고 불려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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