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달력을 보면 국제 생물다양성의 날만 표시되고 다른 것은 없던데요. 하지만 가상화폐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바로 ‘피자데이’죠.
바로 15년 전, 5월22일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개발자 라스즐로 핸예츠가 온라인 포럼에 “비트코인으로 피자를 사고 싶다”는 글을 올렸고 이를 본 영국인이 파파존스에 전화를 걸어 1만 비트코인에 피자 두 판을 대신 배달 시켰죠. 당시만 해도 1만 비트코인은 약 41달러의 가치였습니다. 개당 0.0041달러 수준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시세는 얼만지 아실 것입니다. 1비트코인이 10만 달러를 넘죠. 따라서 지금가치로 무려 1조 4000억원짜리 피자였던 셈입니다.
다 아는 이야기를 왜 또하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격 급변동 때문에 비트코인은 화폐로서의 역할이 한정돼 있죠.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해 관심을 끌었던 엘살바도르도 지난 1월 IMF에게 14억 달러를 빌리면서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지위를 철회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상화폐 기반의 체크카드로 식당 등을 이용하는가하면 가상화폐 ATM까지 등장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혹시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도 언급되는 이유가 뭘까요?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는데요. 서울 남대문 시장에 가면 재미난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가상화폐 ATM’인데요. 지난해 12월부터 다윈KS라는 업체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비트코인이나 테더 같은 가상자산을 넘기면 시세에 맞춰 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이 실생활에서 법정 화폐처럼 쓰이는 겁니다.
물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 규제 예외 허가를 받아 외국인만 가능하죠. 우리나라에 여행 온 외국인이 여권만 있으면 은행 방문 등 번거로운 절차 없이 비대면 본인인증(KYC)을 통해 디지털지갑(페이퍼월렛) 또는 선불교통카드(DTK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고 환전·충전 서비스를 받는 것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외국에서 코인 환전 경험이 있는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회사 홈페이지를 보니 스타필드코엑스몰, 해운대신라스테이 등에도 설치돼 있군요.
그럼 한국인은 이용할 수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해외에 가면 이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암호화폐 ATM은 현재 70개국 3만9094대가 운영 중이다. 홍콩 172대, 필리핀 44대, 대만 21대, 일본 3대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식당 등에서 가상화폐로 결제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홍콩계 ‘레돗페이’가 이미 국내에 상륙한 덕분인데요. 실명과 생년월일, 주소, 신분증 등의 고객신원확인(KYC)을 거치면 우리나라 사람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쓸 수 있는 가상 카드는 10달러를 내면 즉시 발급됩니다. 아이폰 이용자는 애플페이에 등록해 결제할 수 있죠. 실물 카드는 100달러를 내면 되는데 발급에 2주가량 걸립니다. 홈페이지를 보니 전세계 무려 1억3000만 이상의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스타벅스, 맥도날드, KFC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곳이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 중심에는 미국 달러나 금 같은 안전자산 가치와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스테이블 코인’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화폐를 대체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 변동성이었죠. 결제 전후 가치가 급등하거나 급락할 리스크가 너무나 컸습니다. 또 거래 처리 속도와 수수료 측면에서도 실생활에서 쓰기엔 한계가 있었죠.
하지만 스테이블 코인은 이런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안정적인(Stable)’이란 이야기인데요. 달러나 금 같은 특정 자산의 가치에 연동시킨 이유가 바로 가격 안정이란 목표 때문이죠. 게다가 블록체인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빠르게 결제하고 취소도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합니다. 이런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 자산을 담보로 삼은 테더나 USDC가 대표적인데요. 발행업체가 1달러짜리 코인을 판 돈으로 미국 국채 등을 사놓고 언제든지 다시 현금으로 돌려주는 구조입니다.
덕분에 별도 환전 없이 실시간으로 사실상 달러를 원화로 전환해 온·오프라인에서 결제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신용카드, 체크카드와는 어떻게 다를까요?
해외에서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달러 결제를 할 때는 카드사나 은행의 환율이 기준이 됩니다. 통상 고시 환율에 1~2%가 추가로 붙어 청구됩니다. 환전 마진을 떼이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죠. 1~2%에 달하는 해외 이용 수수료까지 붙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결제액의 2.5% 정도를 카드사나 은행에 더 내야 합니다. 100만원을 쓰면 생돈 2만5000원을 뜯기니 적은 금액이 아니죠.
하지만 스테이블 코인 카드는 다릅니다. 앞서 설명한데로 결제 순간 실시간 시장 환율이 적용합니다. 즉 환전 마진이 거의 없다는 얘기입니다. 결제수수료만 내게 되는데 레돗페이는 결제 수수료가 1%입니다. 100만원을 긁으면 약 1만5000원 정도 절약할 수 있는 셈이죠.
그럼 가상화폐ATM은 어떨까요? 은행 수수료와 동일하거나 적습니다. 그런데도 24시간 환전이 가능하죠. 이 때문에 은행보다 빠르게,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액수가 얼마든지 달러를 보내거나 받으려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이런 장점이 알게 모르게 알려지면서 스테이블 코인 시장 규모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윤석열의 내란으로 불안이 가중되면서 넉 달 새 해외로 유출되거나 해외에서 유입된 스테이블 코인 규모는 85조 원어치에 달한다는데요. 거래소를 통하지 않아 통계에 안 잡히는 거래까지 감안하면 유출입 규모는 더 클 걸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얼마나 믿을 수 있냐겠죠.
스테이블 코인하면 떠오르는 악몽이 있거든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테라 루나 사태. 권도형이 무려 58조원의 손실을 일으킨 것도 바로 스테이블 코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크게 세 가지 방식있습니다.
첫 번째가 바로 권도형의 테라·루나 같은 알고리즘형인데요, 담보 자산 없이 알고리즘에 의해 발행량을 조절해 가격을 안정시키는 방식입니다. 물론 계산대로 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알고리즘 오류나 급격한 시장 변화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죠. 그래서 테라-루나 사태가 일어난 것이고요.
두 번째가 암호화폐 담보형.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다른 암호화폐를 담보로 발행하는 방식인데요. 비트코인 등이 가격변동이 극심하기 때문에 이것도 안정적이지 않죠.
세 번째가 법정화폐 담보형입니다. 앞서 설명드린대로 미국 달러, 금 등 법정화폐를 담보로 발행합니다. 발행량만큼의 법정화폐를 은행 등에 보관하고, 이를 증명하는 방식이죠. 따라서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담보자산이 실제하느냐는 점인데요. 발행사가 약속한 담보 자산을 제대로 보유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관리하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장 1위 사업자인 테더의 경우, 약 1400억 달러 규모의 발행량 중 1100억달러 정도를 미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나 독일 정부 웬만한 OECD 국가가 보유한 수준인데요. 이 덕분에 시장 신뢰를 얻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도 있습니다. 신고도 안 해도 되니까 자금세탁이나 불법 자금 송금 등에 악용될 여지가 있거든요. 이러다 보니까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의 대체재이기 때문에 ‘외환관리법 차원에서 봐야 한다’ ‘규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런 언급을 하는 이유는 통화주권과 관련있기 때문입니다.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이 활성화된다는 건 결국 기축 통화인 달러를 누구든, 어디서든 쉽게 쓸 수 있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원화의 수요는 감소할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원화 표시 스테이블 코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국민의힘이 개콘보다 웃긴 대선후보 강제교체를 하는 사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시장 조성을 위한 신속한 제도화 추진을 약속했습니다. 이 후보는 “달러 기반 또는 미국 국채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으로 가상자산 시장을 점령하려는 것 같다”며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만들어야 국부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이어 이 후보는 “이 시장에 빨리 진출해야 하고, 불안하지 않고 거래에 참여할 수 있게 시장을 관리·감시해야 한다”며 “지금 방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용진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은 한국 자산시장과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국내 암호화폐 시장의 구조적 비효율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고 화답했습니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이어지지만 점점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15년 전 피자데이가 조만간 일반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전환점에서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담가선 안되겠죠. 악용 소지가 있으면 그걸 봉쇄하면 되고, 구더기가 생기면 구더기를 제거하면 됩니다. 그래야 미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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