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가입국 중 최저임금제를 운영 중인 나라는 26개국입니다. OECD가입국이 34개국이니 무려 8개 국가나 최저임금제가 없는 셈입니다. 이들 국가의 노동자들은 우리나라보다 더 열약할까요.
당연히 아니죠. 덴마크·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아이슬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노동조합이 실업보험을 관리·운영하는 ‘겐트시스템’이 굳건합니다. 이 때문에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아 굳이 법정 최저임금제를 도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탈리아는 ‘모든 노동자는 관련 부문 단체협약 중 가장 낮은 임금을 적용받을 권리가 있다’고 헌법에 명시돼 있습니다. 굳이 법정 최저임금제를 도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죠.
따라서 8개국은 최저임금이라는 제도는 없지만 사실상 최저임금을 보장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최저임금제를 시행중인 나라들은 어떨까요. 최저임금을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는 뉴질랜드로 무려 120여년 전인 1894년에 도입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 고종 31년으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던 때입니다. 정말 놀랍죠. 이 덕분인지 현재 뉴질랜드의 최저임금은 선진국에서도 최고 수준인 14.75달러(약 1만7000원)입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도 생각보다 최저임금을 이른 시기에 도입했습니다. 1938년 공정근로기준법으로 연방최저임금을 도입한 것이죠. 왜 이렇게 빨리 도입했을까요. 1938년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기입니다. 대공황을 탈출하기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최저임금은 독특합니다. 연방정부차원 최저임금의 기준을 정하면 각 주정부와 의회가 각자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연방정부에서 정한 최저임금은 7.25달러입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는 현재 10달러로 연방정부보다 많습니다. 더 재미난 것은 캘리포니아주 의회가 지난 3월 법정 최저임금을 2022년까지 시간당 15달러(약 1만7000원)로 올리는 법안을 의결했다는 점입니다. 미국 연방 최저임금의 2배가 넘는 금액이죠. 이어 매사추세츠 주는 9달러로 최저임금을 높였고, 뉴욕 주도 시간당 8.25달러에서 9달러로 인상했습니다. 하와이는 8.5달러로 올렸습니다.
이웃나라인 일본도 1959년에 최저임금제를 도입했습니다. 결정과정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죠. 노사공익위원 각 6명, 총 18명이 참여하는 중앙최저임금심의회에서 결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중앙최저임금심의회와 지방최저임금심의회가 각각 지역별로 다른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 도쿄가 888엔(약 9500원)으로 가장 높으며, 미야자키, 오키나와가 677엔(약 7300원)으로 가장 낮습니다.
영국은 최저임금보다 한차원 높은 생활임금제도를 4월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의 25세 이상은 올해부터 시간당 7.2파운드(약 1만2000원)를, 2020년에는 9파운드를 받습니다.
독일은 주요 선진국 중 최저임금을 가장 늦게 도입한 편입니다. 이유는 노사간 임금협상의 자율성을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위협이 강화되자 2014년 9월 법을 제정해 2015년 1월1일부터 시간당 8.5유로(약1만7000원)의 법정 최저임금을 모든 업종에 대해 일괄 도입했습니다.
이처럼 사실상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이유가 뭘까요. 경영계의 주장처럼 최저임금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죠. 그런데 많은 연구결과가 이같은 경영계의 지적이 틀렸다는 것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앨런 매닝 영국 런던정치경제대(LSE) 경제학과 교수가 2015년 발표한 ‘법정 최저임금의 이론과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시장이 완전경쟁이라면 경영계의 주장처럼 최저임금으로 고용을 줄어듭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경쟁이 아니죠. 따라서 최저임금과 고용의 상관관계가 부족하다고 강조합니다.
가장 최근에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독일의 사례도 재미있습니다. 독일이 최저임금을 도입할 때 실업자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해 동안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유입되는 상태에서 최저임금까지 도입되면 경제가 파탄날 것이란 경고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죠.
독일의 지난 5월 계절조정 실업률(계절적 요인을 제거하고 순수한 경기적 요인만으로 작성된 실업률)은 6.1%로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최저임금 시행으로 임금이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소비가 증대되고 이는 곧 고용 증가로 이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고용이 늘면서 정부 세수도 늘었고 이는 정부 지출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경제성장률은 4년 만에 가장 높은 1.7%를 기록했습니다. 경제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최저임금이 고용을 줄여 경제를 파탄 낼 수 있다는 경영계의 주장은 한마디로 거짓인 셈이죠.
이처럼 최저임금은 단순히 노동자들만의, 중소 상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주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국민들이 최저임금 액수에 관심을 쏟는 사이에 더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는 지적이 있다고 했는데 이게 뭘까요.
2017년 최저임금 적용 대상은 전체 근로자의 6명 중 1명 꼴(17.4%)인 336만 명에 달합니다. 상당히 많은 숫자죠. 그런데 이들이 모두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법이 있는데 뭔 말이냐 하는 분들도 계실텐데 실상을 보면 기가막힐 정도입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시간당 6030원인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무려 263만 7000명에 달합니다. 전체 근로자의 13.7%이고 최저임금 대상의 무려 78%에 달합니다. 사실상 최저임금법이 유명무실한 셈입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지난해 고용부가 직접 최저임금 미지급을 적발한 건수는 919건에 불과합니다. 특히 2011년 2077건, 2013년은 1044건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반면 근로자가 직접 최저임금 미지급을 신고한 건수는 2011년은 800건, 2013년 1408건, 지난해 2010건으로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이죠. 감독 기관 적발 건수는 해마다 줄고 있는 반면 근로자의 신고 건수는 반대로 매년 늘고 있는 겁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고용부가 적발한 총 3만2997건의 최저임금 위반 건 중 사법처리까지 이루어진 건수는 겨우 64건입니다. 과태료를 부과한 건수도 17건에 불과합니다. 전체 위반건수의 0.2% 밖에 처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걸리지도 않고 걸려도 처벌받지 않는데 누가 법을 지키려고 하겠습니다.
호주는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급여를 지급한 편의점 점주에게 미지급액의 5배인 40만8000호주달러(약 3억6000만 원)을 ‘벌금 폭탄’을 부과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최저임금 위반 시 최고 6억 6700만원의 벌금을 물리는 강력한 처벌 기준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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