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피디픽]‘양자컴퓨터’가 미래 바꿀까?···비트코인 긴장해야 할까?
‘지난해가 AI(인공지능)이었다면 올해는 ‘양자컴퓨터’다.’
최근 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7일 시작되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에서 양자컴퓨팅 부문이 신설된 것은 물론 UN마저 올해를 ‘양자 과학 기술의 해’로 지정한 덕분인데요. 1925년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의 근간을 다진지 100년이 됐기 때문인데요. 덕분에 양자컴퓨팅 관련주도 일제히 급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열풍이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에게는 악재일 수도 있다는데요. 이유가 뭘까요?
일단 양자컴퓨터가 무엇인지 알아봐야 겠죠. 양자 컴퓨터는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컴퓨터입니다. ‘양자역학’이란 말은 다들 들어보셨을 것이지만 이해하기 힘들죠. 양자역학하면 떠오르는 김상욱 교수마저도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언급할 정도로 정말 어려운 학문이기 때문에 그냥 용어정도만 알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양자컴퓨터는 뭐가 다른 걸까요? ‘10자년’이라는 시간 단위를 아시나요? 10자년은 10셉틸리언(10의 24제곱·Septillion)년을 말합니다. 1조의 10조배. 정말 말도 안되게 긴 시간이죠.
그런데 현재 컴퓨터로 10자년은 걸려야 풀 수 있는 문제를 단 5분 만에 풀어내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된다면 어떻게 될까? 산업혁명이나 인터넷·모바일·AI 혁명을 뛰어넘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가능성이 제기돼 지난해 화제를 모았는데요. 2024년 12월 11일 구글은 새로운 양자컴퓨터칩 ‘윌로우’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스마트폰보다 작은 이 칩을 활용하면 10자년이 필요한 문제를 5분에 풀어낼 수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매우 단순하게 설명하면 슈퍼컴퓨터를 포함한 기존 컴퓨터는 0 또는 1 중 하나의 값만을 표현할 수 있는 비트(Bit)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하면 떠오르는 ‘슈레딩거의 고양이’처럼 양자 상태에서 0과 1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큐비트(Qubit)로 연산합니다.
좀더 쉽게 말해 기존 디지털컴퓨터는 직렬 방식입니다. 통로가 하나뿐인 미로에서 모든 길을 하나씩 직접 가본 후 시행착오를 거쳐 정답을 찾아냅니다. 단순 작업이면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변수가 많고 복잡한 계산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죠.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병렬 방식입니다. 갈 수 있는 모든 경로를 한꺼번에 분석해 출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덕분에 기존 슈퍼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연산 속도를 자랑하죠.
이런 양자컴퓨터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존 양자컴퓨터는 모든 물질에서 전기 저항이 사라지는 절대 온도 0도(영하 273.15도)인근 까지 냉각시킨 상태에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외부의 저항에 쉽게 오류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윌로우도 영하 200도 이하에서 작동하는 ‘초전도 방식’입니다.
하지만 구글은 양자컴퓨터의 단점이었던 오류 발생률을 크게 줄일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장점입니다.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논문만 보면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대규모 양자컴퓨터에서도 오류 없는 알고리즘 실현이 가능할 수 있다는 거죠. 올해 안에 실제 사례를 발표할 예정이니 기대가 큽니다.
속도가 빨라지고 오류가 사라진 양자컴퓨터로 뭘 할까요? 지난해 열풍이 몰아진 인공지능(AI) 시장이 커질수록 막대한 계산량을 처리할 수 있는 양자컴퓨팅 기술 발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빠른 계산이 뒷받침돼야 인간과 유사하게 인공지능이 반응할 수 있겠죠.
뿐만아니라 양자컴퓨터는 신약 개발, 우주공학, 재료과학, 금융 모델링, 기후 변화 등 인류가 풀지 못한 다양한 숙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양자컴퓨터 관련주들도 급등하고 있고요. 윌로우를 발표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주가는 발표 직후 장중 177달러에서 188달러까지 급등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193.13달러에 마감했고요.
이 때문에 증권가에선 수혜주 찾기로 분주합니다. 아이온큐, 리게티컴퓨팅, 퀀텀 컴퓨팅, 디웨이브퀀텀 등이 꼽힙니다. 한 달 새 양자컴퓨터 대장주로 꼽히는 아이온큐는 32.7% 상승했으며 다른 테마주인 리게팅 컴퓨팅은 500% 이상, 퀀텀 컴퓨팅과 디웨이브퀀텀은 200% 이상 올랐습니다. 국내 기업중에는 한국첨단소재, 아이윈플러스, 아톤, 코위버, 우리넷 등이 수혜를 입고 있고요.
그런데 재미난 점이 있습니다. 의외의 분야에 악재가 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바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입니다. 미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에 10만 달러 선에서 오르내리던 비트코인 가격이 윌로우 발표와 함께 9만5000달러 밑으로 떨어졌고, 알트코인들은 더 크게 하락했습니다.
물론 미 연준의 긴축 선호 발언 등 다른 요인의 영향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양자컴퓨터가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오래전부터 나왔기 때문에 윌로우 영향이 있다는 시각도 우세합니다.
그럼, 양자컴퓨터가 암호화폐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가 뭘까요? 크게 두가지인데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가지는 정말 걱정할 만 하고 나머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채굴. 다들 아시다시피 암호화폐를 채굴하기 위해서는 속도가 필수죠. 그래서 그래픽카드 열풍이 몰아쳤고요. 따라서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암호화폐 채굴은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됩니다. 물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들 양자컴퓨터를 쉽게 설명하려고 할 때 기존 컴퓨터로 푸는 데 오래 걸릴 문제를 양자컴퓨터는 순식간에 풀 수 있다고 말하잖아요. 앞서 언급했던 현재 컴퓨터로 10자년은 걸려야 풀 수 있는 문제를 단 5분 만에 풀어낸다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모든 문제를 이렇게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특정 연산에 한해서만 맞는 말이라는 건데요.
즉 양자컴퓨터는 현재 ‘소인수분해’에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능력인 ‘해시함수’를 푸는 데는 그리 빠르지 않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F1경기장에서는 빛의 속도로 달리지만 자갈이 가득한 오프로드에서는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거죠.
구체적으로 비트코인 채굴에서는 대략 2배 정도 빠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하는데요. 물론 도지코인처럼 채굴량이 무한정이라면, 채굴 속도가 빨라졌을 때 시장에 코인 공급이 늘어 코인 가격이 내릴 수도 있겠지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최대 공급량이 정해졌고, 채굴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거든요. 따라서 공급 과잉으로 가치가 폭락할 가능성은 적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도 당분간입니다. 현재 양자컴퓨터 기술에서는 해시함수를 효과적으로 역산하는 알고리즘이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개발되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죠. 따라서 채굴이 늘어나 암호화폐가치를 폭락하는 것은 당분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암호화폐 업계가 진짜로 우려하는 건 뭘까요? 바로 보안, 즉 해킹입니다. 미 허드슨 연구소의 아서 허먼은 누군가가 양자컴퓨터 해킹 능력을 개발하고, 이를 암호화폐 공격에 사용하려고 한다면 시간 문제라고도 우려합니다. 10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앞서 양자컴퓨터가 해시함수를 푸는데는 아직 젬병이지만 ‘소인수분해’에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했죠. 그런데 소인수분해가 쓰이는 분야가 현재의 보안체계인 RSA입니다. RSA는 대부분 소인수분해와 이산로그 문제로 이뤄져 있거든요. 따라서 양자컴퓨터가 이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거죠.
더 나아가 암호화폐의 근간인 블록체인도 뚫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보안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거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바로 양자컴퓨터가 풀 수 없는 문제로 암호를 구성하는 ‘양자내성암호’ 기술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암호를 구성하기는 쉽지만, 역으로 푸는 건 일반컴퓨터는 물론, 양자컴퓨터도로 어려운, 예컨대 격자 기반 문제 등을 적용하는 겁니다.
그럼 해킹이 현실화하기 전에 양자내성암호를 적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쉽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암호화폐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탈중앙화 때문인데요.
기존 금융 시스템은 중앙은행과 같은 중앙기관이 시스템을 총괄하기 때문에 비용을 들여서라도 필요하다면 새로운 보안 체계로 전환하기가 쉽죠. 하지만 암호화폐는 탈중앙화, 그러니까 중앙 기관이 없거든요. 새로운 보안 기술을 도입하려면 네트워크 참여자의 동의가 필요하고, 합의에 이르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엄청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게다가 기존 자산을 새로운 체계로 옮기는 과정에서 데이터가 손실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암호화폐들이 양자내성암호를 도입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죠. 양자내성암호가 적용된 특수한 암호화폐가 이미 나와있기도 합니다.
현행 암호체계를 뚫고 모든 금융자산을 위협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 그리고, 양자컴퓨터가 풀 수 없는 양자내성암호! 모든 걸 뚫을 수 있는 창과 그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 사이의 전쟁이 펼쳐질텐데요. 누가 승리할까요?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처럼 우리는 결국 답을 찾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